천우이야기/단상.. 그 짧은 상념

아카시아 꽃피는 날의 상념

이 강산 2010. 5. 23. 22:18

 바람이 창을 두드리고 있다.

 

 한껏 터트린 꽃망울을 내려놓은  나무들이 물 머금어 갈증을 해소하더니
이젠 눈이 닿는 곳 어디에도 푸르름으로 채색되어 있는 계절이 보인다.


 벌써 한 낮의 햇살은 따갑기만 하다.
하지만  이른 아침,  그리고  해 저물어 내 그림자 사라지는 밤이 오면  언뜻 한기를
느끼기도 한다.


 누구를 닮은 것일까? 그 계절이 참으로 변덕스럽기만 하다.
하루종일 햇살이 구름사이로 숨박꼭질을 해대더니, 지금은 바람 마저 살랑거린다.


 그 바람이 홀로 있는 나의 창을 두드린다.

조용한 상념에 젖어들고 싶어하는 나는  그 바람 속에서 울적함에 잠겨들고
이젠 무엇으로도  나를 달랠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.

 

 읽고 있는 책을 덮고  밖을 바라본다.

어떤 책이라도 펴 들고  넘기다 보면
모든 것 잊고 그 속에 빠져들어 다 잊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 
살짝 열어놓은 바람에 저만치 멀어져만 가고
한 줄 한 자도 다 망각한 채 이미 어둠에 쌓여버려 형체를 잃은  어느 꽃나무에선가
실려오는 진한 향기만이 가득하다.


 아카시아 ?
그래 이 향기는 분명 아카시아 꽃이다.
이맘 때 쯤 이면 온 산을 지배하며  하얗게 피어,  눈송이로  눈꽃으로  날리는 그 꽃.
그 내음이다.
설레이는 오월을 보내는 여인들의 빈 가슴 속 으로 파고든다는 바로 그 내음이다.


 음악도 꺼야하는 것일까?

조용히 들려오는  이름 모를 선율!
이런 날의 음악은  내 머리 속을  소용돌이처럼 휘감아 돈다.
내가 떠올리고 생각해야 할 모든 것들을  음악이 지배하려 한다.


 왜  갑자기 음악을 켜고  책을 펼쳤을까.
아니 왜 창문을 조금 열어 놓았을까?
모든 것들에게서 나를 짖 누르는 이 의미를 찾아보려 하지만 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다.

무엇이 저리도 웅크리고 있는 걸까?

한 낮이라면 싱그러움으로 파고 들 초록 산이  불 빛 하나 없이  자리 잡아 
끊임없이 나를 자극한다.


 초록이던 암흑이던  네 가슴속에 있는 거라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.
정말 내 마음속에 모든 것이 있는 것인지  그것을 모르겠다.
정말 그러면...
그것을 안다면.
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.


 책도, 음악도 아니고,  바람도 아니며 초록 산도 아니라면 ...
그 어떤 것도 나를 울적함에 빠뜨리지 않는 것이라면  날 이 한없는 상념 속에서만 있게
하지 않을 것이다.

 

 상쾌한 아침을 맞고 싶다.

아침 창  밖으로 나가
온 세상의 햇살을  두 팔에 다 껴안고 있는 듯 한
충만함으로 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.


 늘 헤매어야 하는 회색빛 도시의 우울을  햇살의 화려함으로 채색하고 싶다.
나무가 꽃을 피고, 초록으로 변하며 늘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듯이
나 역시 그러고 싶다.

 

 오늘은...

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또 다른 하루는
마주친 모든 사람에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
그런 내가 되고 싶다.
아직 밖으로 나가지 않은 내가  자꾸 서투른 미소를 지어 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.

정말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내가 되기를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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