바람이 창을 두드리고 있다.
한껏 터트린 꽃망울을 내려놓은 나무들이 물 머금어 갈증을 해소하더니
이젠 눈이 닿는 곳 어디에도 푸르름으로 채색되어 있는 계절이 보인다.
벌써 한 낮의 햇살은 따갑기만 하다.
하지만 이른 아침, 그리고 해 저물어 내 그림자 사라지는 밤이 오면 언뜻 한기를
느끼기도 한다.
누구를 닮은 것일까? 그 계절이 참으로 변덕스럽기만 하다.
하루종일 햇살이 구름사이로 숨박꼭질을 해대더니, 지금은 바람 마저 살랑거린다.
그 바람이 홀로 있는 나의 창을 두드린다.
조용한 상념에 젖어들고 싶어하는 나는 그 바람 속에서 울적함에 잠겨들고
이젠 무엇으로도 나를 달랠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.
읽고 있는 책을 덮고 밖을 바라본다.
어떤 책이라도 펴 들고 넘기다 보면
모든 것 잊고 그 속에 빠져들어 다 잊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
살짝 열어놓은 바람에 저만치 멀어져만 가고
한 줄 한 자도 다 망각한 채 이미 어둠에 쌓여버려 형체를 잃은 어느 꽃나무에선가
실려오는 진한 향기만이 가득하다.
아카시아 ?
그래 이 향기는 분명 아카시아 꽃이다.
이맘 때 쯤 이면 온 산을 지배하며 하얗게 피어, 눈송이로 눈꽃으로 날리는 그 꽃.
그 내음이다.
설레이는 오월을 보내는 여인들의 빈 가슴 속 으로 파고든다는 바로 그 내음이다.
음악도 꺼야하는 것일까?
조용히 들려오는 이름 모를 선율!
이런 날의 음악은 내 머리 속을 소용돌이처럼 휘감아 돈다.
내가 떠올리고 생각해야 할 모든 것들을 음악이 지배하려 한다.
왜 갑자기 음악을 켜고 책을 펼쳤을까.
아니 왜 창문을 조금 열어 놓았을까?
모든 것들에게서 나를 짖 누르는 이 의미를 찾아보려 하지만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다.
무엇이 저리도 웅크리고 있는 걸까?
한 낮이라면 싱그러움으로 파고 들 초록 산이 불 빛 하나 없이 자리 잡아
끊임없이 나를 자극한다.
초록이던 암흑이던 네 가슴속에 있는 거라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.
정말 내 마음속에 모든 것이 있는 것인지 그것을 모르겠다.
정말 그러면...
그것을 안다면.
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.
책도, 음악도 아니고, 바람도 아니며 초록 산도 아니라면 ...
그 어떤 것도 나를 울적함에 빠뜨리지 않는 것이라면 날 이 한없는 상념 속에서만 있게
하지 않을 것이다.
상쾌한 아침을 맞고 싶다.
아침 창 밖으로 나가
온 세상의 햇살을 두 팔에 다 껴안고 있는 듯 한
충만함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.
늘 헤매어야 하는 회색빛 도시의 우울을 햇살의 화려함으로 채색하고 싶다.
나무가 꽃을 피고, 초록으로 변하며 늘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듯이
나 역시 그러고 싶다.
오늘은...
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또 다른 하루는
마주친 모든 사람에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
그런 내가 되고 싶다.
아직 밖으로 나가지 않은 내가 자꾸 서투른 미소를 지어 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.
정말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내가 되기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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