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돈이다 밟아라 주워라( 2)

이 강산 2005. 2. 18. 00:46

그 날은 가을 하늘 중에서도 가장 높고 파랗게 빛나는 날이었습니다.


삼천리 금수강산 아름다운 우리나라 ...

 
지금도 나는 그것만은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.
하느님이 천지를 창조 할 때 좋은 것은 아껴두다가, 마지막에 남은 것은 어쩔 수없이 우리 한 반도 에 모조리 주었다는.. 그 전설은 틀림없습니다. 안 그러면 우리나라가 절대 이렇게 아름다울리 없으니까요.

" 우리, 설악산에 단풍 구경이나 갈까?"
" 글쎄, 취업에 신경 써야하는데 갈 시간이 있을까?"
" 야! 우리 삼총사가 언제 그걸 따지면서 살았냐?"

나는 친구들, 그리고 예쁜 백조들과 함께 정담을 나누면서 도로를 걷고 있었습니다.
하긴 뭐 이때쯤이면 대개 같은 학번의 선녀들은 직장을 다니거나, 시집을 갔거나 둘 중의 하나이죠. 아! 물론 백조들도 있습니다. 그러니까 저희가 이렇게 미팅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.


여자들은 요리를 잘 합니다.
내 엄마가 요리를 잘 하는 이유는 여자이기 때문입니다.
그렇지만 한 번쯤은 남자도 요리를 해야 합니다.
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이 자리에서 하냐구요?
아! 물론... 필요해서랍니다.
음, 뭐냐. 그러니까 내말인즉슨 남자는 요리 잘하는 여자를 마누라 삼아 평생 얻어 먹으려면 그 여자를 골라 한 번 요리를 해야 한다는... 뭐 그런 말입니다.


피이익 피융-- 엉? 이게 무슨 소리...?


허걱.. 여기 저기서 돌 날아오는 소리가 공기를 가르는 군요.
맞아 죽지는 않아야 될텐데~

더 맞기 전에 얼른 말 바꾸겠습니다.
그러니까 우리가 정말 잼나는 일을 만들기 위해 뒤에 예삐들도 데리고 길을 걷는데...
갑자기 내 눈에서 파아란 번갯불이 휘익 스쳐 지나갔습니다.
이 느낌, 이 느낌은?
자석처럼 끌리는 이 분명한 텔레파시... 나는 몸을 떨 듯 전율하면서 스쳐지났던 그 땅바닥을 다시 보았습니다.
그건 분명 정말 오랜만에 보는 배춧잎이었습니다.

돈이다.!
나는 크게 고함을 지르며 뛰어갔습니다.
군대에서 버릇을 고쳤지만 아아 그런 구라였습니다.

밟아라.!
누군가 고함을 지르며 휘익 나를 앞섰습니다.
어어? 뭐 이렇게 빠른 놈이 있지? 그 넘은 바로 내 친구 였습니다.
그 넘은 얼른 그 존경하는 대왕님을 무지막지하게 발로 캭 밟았습니다.

 

+ 망할 넘, 존경하는 세종대왕님을 무자비하게 밟다니..+

주워라!
또 다른 누군가가 밟은 넘을 거세게 밀어버렸습니다.
그 자식도 내 친구 였습니다.
쿠다다당탕
밟고 있던 넘이 순간적인 기습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.
그리고 그 넘이 유유히 미소를 지으며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떨어졌을 그것을 주워들었습니다.

세상을 손에 쥔 듯한 미소.
아아 그것은 고선지 장군이나 광개토대왕 이 지었을 바로 그 승리자의 미소였습니다.
우린 군침을 흘리며 그 넘이 미소를 지으며 뽀-를 해주는 뒤로 가서 섰습니다.
이미 패배자이니 우정을 확실히 인식시켜줘야 혼자서 독식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팍팍 들기도 했습니다.


그런데...
그런데 말이죠?
우린 거의 동시에 이상한 느낌에 빠졌습니다.


" 어? 왜지 ?"


그리고 또 다시 내려치는 벼락! 엄청난 상실감!


"이 돈 가짜다. "


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고함을 지르고 말았습니다.
세상에, 세상에나, 그 배춧잎에는 우리가 쓰는 위대한 글을 만드신 그 대왕님이 보이시지가 않으셨습니다.


- 주무시러 침전에 드신 것은 분명 아닐텐데 말이죠.-


그렇다면 결론은 하나...
바로 가짜 돈 !
무지막지 인정사정없던 친구의 손이 힘을 잃고 늘어졋습니다.
그와 함께 허공을 나풀거리며 다시 땅바닥에 내려앉는 배춧 잎...


우린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.


에이, 어떤 넘이 이걸 주워, 우리처럼 재수 옴 붙었다 생각하고 캭 가래를 뱉겠지.
그걸 생각하니 약간 기분이 나아졋습니다.
아니나 다를까 그런 생각이 끝나자마자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.


" 어라, 배춧잎이 떨어져 있네? 사람들은 허공을 보나. 왜 이런 좋은것도 못 보지?"


우린 고개를 돌려 그 곳을 보다가 서로 마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.
잠깐 동안 금이 갈 뻔 했던 우정이 다시 회복되는 것을 느끼게 될 정도로 기대를 하고 말이죠.


-이젠, 에이 가짜돈이잖아, 재수없어..캭..-


가리침을 뱉으며 돈을 찢거나 버리겠죠.


" 에잉? 누가 돈을 이렇게 만들어 놨지? 아하.. 필시 호주머니에 있는 것을 모르고 세탁기에 넣어 빨래를 했군그래. 이 정도로 지워진 것을 보니 세재 엄청 독한 것 사용했군 쯧쯔. "
그 넘은 우리를 힐끗보며 혼잣말을 하더니 보란듯이 쪼옥 입을 맞추고는 날아갈새라 배춧잎을 흔들며 유유히 사라져갔습니다.


- 아아, 하느님, 아니 세종대왕님.-


그 날 우리 셋의 질긴 우정은 끝나고 말았습니다.
백조들은 다시 연락하면 소금뿌려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은 후 혀를 끌끌 차며 사라졌습니다.
물론 나는 그 날이후 며칠 간을 골방에 쳐 박혔습니다.
그리고 중무장한 후 다시 고개숙인 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.
................
..............

내 나이 서른 하고도 다섯.
나는 아직도 숫총각입니다.
가끔 선을 보기는 했지만, 요즘처럼 살벌한 세상에 고개 숙인 나를 좋아 할 여자가 있을리가 없죠.
나랑 잠깐이라도 데이트라도 할 때.. 번뜩이는 나의 눈이 고개를 숙이고 도로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으니 보통사람들이라면 내 곁에 남아 있을 리가 없죠. 뭐 그래서 말 없이 도망가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.
그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저는 가는 여자를 붙잡을 수도 없습니다.
제가 고개를 잘 숙여서 상사들이 이쁘게 봐주는 것일까요?
그래도 직장에서는 아직 안 짤리는 게 제 생각에도 참 용합니다.

어제도 비가 내리던데 오늘도 구질구질 하군요.
지금은 꽃비가 되어 내리지만, 열흘은 가야 할 화려함이 이렇게 쉽게 져 버리니...
벛꽃이 이제 절정인데, 이 비를 이겨내지 못하고 다 지면 어떡하나 정말 걱정이 됩니다.
내가 있는 사무실은 여의도입니다.
올해는 어떻게든 벛꽃 길 아래서 빈 옆구리 채워줄 짝을 찾아, 고개 들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틀렸나봅니다.
설레임에 콩깎지 씌워진 노처녀라도 만날 줄 알았는데.. 비가 오고 꽃이 지니..
올해도 틀렸나 봅니다.

" 여러분 ! 여러분 ! 누가 나랑 벚꽃 길 걸을 분 없슈?"

" ..........................."

역시 조용하군요.
언젠가 우연히 길을 가다가 고개 숙인 여자라도 만날 수밖에..
흑흑..

^^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