울고있던 여인
종종걸음을 하며 도로모퉁이를 도는 순간 문득 바람이 차갑다는 느낌이들어 잠바 지퍼를 올리고
깃도 세웠다.
그때였다.
누군가의 흐느낌소리를 들은건....
" 니가 뭔데 나를 때려 개자식아 "
" 니가 뭔데 나를 때려 이 나쁜새끼야 "
참, 말도 모질게한다.
언뜻 생각하며 눈을 돌리니 한 여자가 웅크리고 앉아 울고있다.
그 옆에 어쩔줄모르고 서 있는 남자.
힐끔 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
남자가 여자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하자 아예 발을 뻗고 누워버리는 여자.
마흔초반?
눈물 범벅인데도 얼굴이 갸름하고 꽤 이뻐보인다.
" 개자식. 내가 널 어떻게 했는데 ...."
" .................."
" 너같은 새끼는 쓰레기소각장에서 태워버려야 돼."
" ................. "
" 개자식, 너랑은 이제 영원히 끝이야. 끝 "
여자의 말은 갈수록 모질어지지만 남자는 여전히 여자를 잡아 끌려할 뿐 말이 없다.
바닥이 제법 차가울텐데 ...
치마를 입어 무릎을 드러난 여자의 다리가 시려보인다.
" 흑흑흑... 개자식 "
" 흑흑흑... 개새끼 "
여자는 아마 다른 욕설은 배우지 못했나보다.
" 개자식! 너 같은 놈을 믿고 시집와서 아들,딸 낳아주고 온갖 뒷바라지 다해줬더니 나를 때려?"
아아~ 이제보니 두 사람은 부부였구나.
힐끔거리며 핸폰을 들고 번호를 누를까 망설이던 사람들이 가던 길을 간다.
그리고 나도 갔다.
++ 그들은 무슨 일이 있었을까? ++
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나는 문득 그녀가 창피함도 무릅쓰고 울며 악을 쓸수 밖에 없는 사연이 궁금해졌다.
++ 왜 .............. 일까 ? ++
신호가 바뀌어 사람들이 다 건너고 다시 빨강불이 되었을때 나는 다시 그 자리로 발걸음을
돌리고 말았다.
" 집에 애들 밥도 안 챙겨주고 고스톱 치겠다고 도박하러 다닌게 잘 한거야?""
그 자리에 다시 갔을때 그들은 여전히 그대로 였고, 난 아까는 듣지 못했던 남자의 말을
들을수가 있었다.
" 그것도 모자라 딴 놈이랑 눈 맞아서 바람피고 돌아다니는 주제에 뭐가 말이 많아 , 그리고 뺨 몇대 때린게 그렇게 분해?
++ 아 , 저들은 그래서 길바닥에 저러고 있었구나. ++
흘낏거리던 사람들도 그제야 무슨 일인지를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.
" 개자식 니가 뭔데 ... 니가 뭔데 날 때려 "
여자는 여전히 흐느끼며 악을 쓴다.
" 쯧쯔 , 도박에다 바람 핀 주제에 ..."
누군가 혀를 차며 지나간다.
여자를 가엾게 여기던 사람들의 표정이 단번에 멸시로 바뀐다.
" 지 남편 두고 몸 굴리는 여자는 지근지근 밟아버려야 돼 "
남자의 온순함을 은근히 질책하는 소리가 들린다.
그나마 호기심을 품고 어슬렁거리던 사람들이 더 이상 구경거리가 아님을 깨닫고 사라진다.
" 흑흑흑..."
바람핀 여자의 울음이라기에는 너무 서럽다.
" 흑흑흑... 개.새.끼 "
너무 억울하다.
" 내가 죽어서라도 너 같은 놈하고는 상종하지 않을거야."
내가 떨릴 정도의 무서운 한 이다.
" 가자, 일단 집으로 가자 "
" 내가 왜 니네 집에 가. 개자식아. "
또 개자식이다.
" 아이들을 부를까보다 "
남자가 핸폰을 꺼내든다.
"그래, 불러라 불러. 불러서 말해라. 엄마가 바람난거 들켜서 길바닥에 퍼져 앉아 울고 있다고 불러라 불러. "
여자의 악을 쓰는 목소리가 커져갔다.
" 남은 살찔 틈이 없이 뼈빠지게 일해서 모은 돈 딴 년들과 해외여행 떠나고, 밍크코트사주고,
여관으로 호텔로 온갖 곳 돌아다니며 부벼대다 살림 다 털어먹은게 하도 억울하고 분해서 생전 안해본 고스톱 치는데 갔다가 사내 하나 만났다. "
그녀의 목소리가 흐느낌으로 변했다.
" 니가 평생가야 못해줄 사랑 이제야 난 받아보았다. 이따위 세상 미련도 없어. 그러니 넌 딴뇬에게나 가봐 "
죽는다 해도 일어설 것 같지 않았던 여자가 갑자기 일어섰다.
흐느낌을 멈추고 남자를 바라본다.
온통 눈물 범벅이던 여자 !
어느새 더 이상 눈물은 보이지 않는다.
두 눈이 새파랗게 독기를 띄고 있다.
" 너 같은 놈 한 트럭을 갔다준다해도 싫어. 따라오지마 . 개.새.끼 "
" .........................."
여자는 그 말을 끝으로 신발을 신지도 않은체 골목길로 사라져갔다.
손에 든 핸폰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멍하고 서 있는 남자 !
여자가 웅크리고 흐느끼고 있던 그곳에는 주인 잃은 하이힐 두개가 뒹굴고 있다.
나는 오늘 뭘 본걸까?
그들에게 숨어있는 다른 사연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?
춥다.
문득 아까보다 더 춥다는 느낌에 겉옷 지퍼로 손이 갔다.
지퍼는 이미 닽혀있고, 옷깃도 세워져 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