이 강산 2007. 11. 7. 16:37

종종걸음을 하며 도로모퉁이를 도는 순간  문득  바람이 차갑다는 느낌이들어   잠바 지퍼를 올리고
깃도 세웠다.

 

그때였다.

누군가의 흐느낌소리를 들은건....

 

" 니가 뭔데 나를 때려  개자식아 "

 

" 니가 뭔데 나를 때려  이 나쁜새끼야 "

 

참,  말도 모질게한다.
언뜻 생각하며 눈을 돌리니  한 여자가  웅크리고 앉아  울고있다.
그 옆에 어쩔줄모르고 서 있는 남자.

힐끔 거리며  지나가는 사람들
남자가  여자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하자   아예 발을 뻗고  누워버리는 여자.

 

마흔초반?
눈물 범벅인데도 얼굴이 갸름하고  꽤 이뻐보인다.


" 개자식. 내가 널 어떻게 했는데 ...."

 

" .................."


" 너같은 새끼는 쓰레기소각장에서 태워버려야 돼."

 

" ................. "

 

" 개자식,  너랑은 이제 영원히 끝이야. 끝 "

 

여자의 말은 갈수록 모질어지지만  남자는 여전히  여자를 잡아 끌려할 뿐  말이 없다.


바닥이 제법 차가울텐데 ...
치마를 입어 무릎을 드러난  여자의 다리가  시려보인다.

 

" 흑흑흑... 개자식 "

 

" 흑흑흑... 개새끼 "

 

여자는 아마  다른 욕설은 배우지 못했나보다.


" 개자식!   너 같은 놈을 믿고  시집와서  아들,딸 낳아주고 온갖 뒷바라지 다해줬더니  나를 때려?"

 

아아~  이제보니 두 사람은  부부였구나.
힐끔거리며  핸폰을 들고  번호를 누를까  망설이던 사람들이  가던 길을  간다.
그리고 나도 갔다.

 

++  그들은 무슨 일이 있었을까? ++

 

횡단보도 앞에 서서  신호를 기다리던 나는 문득  그녀가  창피함도  무릅쓰고  울며 악을 쓸수 밖에 없는 사연이 궁금해졌다.

 

++  왜 .............. 일까 ? ++

 

신호가  바뀌어  사람들이 다 건너고  다시  빨강불이 되었을때  나는  다시 그 자리로  발걸음을
돌리고 말았다.


"  집에  애들  밥도 안 챙겨주고  고스톱 치겠다고  도박하러 다닌게 잘 한거야?""

 

그 자리에 다시 갔을때  그들은  여전히  그대로 였고,  난  아까는 듣지 못했던  남자의 말을
들을수가 있었다.

 

" 그것도 모자라  딴 놈이랑 눈 맞아서  바람피고  돌아다니는 주제에  뭐가  말이 많아 ,  그리고  뺨 몇대 때린게  그렇게 분해?

 

++ 아 ,  저들은 그래서 길바닥에 저러고 있었구나. ++

 

흘낏거리던  사람들도  그제야  무슨 일인지를 알았다는 듯한  표정을 짓는다.

 

" 개자식  니가 뭔데 ...  니가 뭔데  날 때려 "

 

여자는 여전히  흐느끼며 악을 쓴다.

 

"  쯧쯔 ,  도박에다  바람 핀 주제에 ..."

 

누군가  혀를 차며 지나간다.
여자를 가엾게 여기던 사람들의 표정이  단번에  멸시로 바뀐다.
 
"  지 남편 두고  몸 굴리는 여자는  지근지근 밟아버려야 돼 "

 

남자의 온순함을 은근히 질책하는 소리가 들린다.

그나마 호기심을 품고  어슬렁거리던  사람들이  더 이상 구경거리가  아님을 깨닫고  사라진다.


"  흑흑흑..."

 

바람핀 여자의 울음이라기에는 너무 서럽다. 

 

" 흑흑흑... 개.새.끼 "

 

너무 억울하다.

 

" 내가 죽어서라도  너 같은 놈하고는  상종하지 않을거야."

 

내가 떨릴 정도의  무서운  한 이다.

 

" 가자, 일단 집으로 가자 "

 

" 내가 왜 니네 집에 가.  개자식아. "

 

또 개자식이다.

 


"  아이들을 부를까보다 "

 

남자가  핸폰을 꺼내든다.

 

"그래,  불러라 불러.  불러서 말해라. 엄마가 바람난거 들켜서  길바닥에 퍼져 앉아  울고 있다고 불러라 불러. "

 

여자의 악을 쓰는  목소리가  커져갔다.

 

"  남은 살찔 틈이 없이 뼈빠지게 일해서 모은 돈  딴 년들과  해외여행 떠나고,  밍크코트사주고,
여관으로  호텔로  온갖 곳 돌아다니며  부벼대다  살림 다 털어먹은게 하도 억울하고 분해서  생전 안해본 고스톱 치는데 갔다가  사내 하나 만났다. "

 

그녀의 목소리가 흐느낌으로 변했다.

 

" 니가 평생가야  못해줄 사랑  이제야 난 받아보았다. 이따위 세상 미련도 없어.  그러니 넌 딴뇬에게나 가봐 "

 

죽는다 해도 일어설 것 같지 않았던  여자가  갑자기 일어섰다.

 

흐느낌을 멈추고  남자를 바라본다.
온통 눈물 범벅이던  여자 !
어느새 더 이상  눈물은 보이지 않는다.
두 눈이 새파랗게 독기를 띄고 있다.

 

" 너 같은 놈  한 트럭을 갔다준다해도  싫어.   따라오지마 .  개.새.끼 "

 

" .........................."

 

여자는 그 말을 끝으로 신발을 신지도 않은체  골목길로 사라져갔다.
손에 든 핸폰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  멍하고 서 있는 남자 !
여자가  웅크리고 흐느끼고 있던  그곳에는  주인 잃은  하이힐 두개가  뒹굴고 있다.

 

나는 오늘 뭘 본걸까?

그들에게 숨어있는 다른 사연들은  또 얼마나 많을까?

 

춥다.


문득 아까보다 더 춥다는 느낌에  겉옷 지퍼로 손이 갔다.

지퍼는 이미 닽혀있고,  옷깃도 세워져 있다.